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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구의 ‘세계사 다시 읽기’] <33> 근대 유럽 과학의 발전 ①
천재들의 세기와 '과학혁명'
17세기를 서양사에서는 보통 '천재들의 세기'라고 부른다. 수많은 천재들이 등장하여 이 시기 서양의 학문적 수준을 한 단계 높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가운데에는 특히 자연과학자들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16세기의 코페르니쿠스에서부터 시작하여 17세기에는 브라헤, 케플러, 갈릴레오, 데카르트, 라이프니츠, 하비, 보일, 뉴턴 등 수많은 과학자들이 등장하고 이들에 의해 천문학, 수학, 물리학, 해부학, 생리학 등이 급격하게 발전한 것이다. 또 18세기에는 라부아지에, 프리스틀리 같은 사람에 의해 화학이 뒤늦게 이에 동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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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많은 서양학자들은 동양에서는 수학이 발달하지 못했으므로 논리적인 사고가 없었으며 결과적으로 과학이 발전할 수 없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서양에서는 '그리스의 지적 사고의 유산이, 무엇보다 논리학과 논쟁을 통한 합리적인 대화와 의사결정이 그 후의 서양의 지적 발전의 길을 마련했다'고 주장한다. 이미 그리스 시기부터 달랐다는 것이다.
물론 일부 사람들은 인도나 중국, 이슬람 문명에서 과학이 상당히 발전했다는 사실과 일부 지역에서는 13, 14세기까지 서양을 능가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이슬람 과학이 14세기까지 유럽과학에 큰 영향을 주었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과학사를 폭 넓게 연구하여 중국과학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데 크게 기여한 조셉 니덤 같은 사람은 중세 시대는 물론 15세기까지 중국 과학이 우월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1644년까지는 중국과 유럽 과학 사이에 큰 차이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차이는 그 후에 생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아시아 과학이 근대과학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서양에서만 그렇게 된 것을 사회경제적, 문화적, 제도적인 여러 차이의 결과로 본다. 즉 서양에서만 근대과학이 발전한 것은 서양사회의 여러 특징들과 법, 종교, 철학, 신학 등 서양의 여러 문화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것이다.
서양에서의 중세대학의 발전, 자유로운 연구 분위기의 존재, 중앙집권적 관료제의 결여 등 온갖 주장을 다 편다. 로버트 머튼 같은 사람은 그 원인을 프로테스탄티즘과 관련시킨다. 청교도들은 그들의 세계관 안에서 과학과 지식활동에 대한 어떤 유의미성을 찾아야 했다는 것이다. 이는 프로테스탄티즘과 자본주의 발전을 연결시키는 베버의 테제를 과학에 적용한 것이다.
근대에 들어와 유럽과학이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발전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하더라도 이런 손쉬운 주장들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슬람과학이나 중국과학 등 비유럽과학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고 있으며 근대 유럽인의 독창성을 과장하여 유럽과학 발전의 실상을 왜곡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양 근대의 어떤 중요한 역사적 사실에건 '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려 하는 것은 20세기 후반 서양 역사학자들의 특유한 태도이나 이런 주장들 가운데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도 많다. 17세기 '과학혁명'을 통해 근대과학과 관련한 이 문제에 한번 접근해 보자.
(매주 수, 금요일 연재)
강철구/이화여대 교수
# by | 2008/04/04 11:12 | 강철구의 세계사 다시보기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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