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혁명의 길 4 - 한국의 사대주의 지식인들과 민족주의

                                                                    한국의 사대주의 지식인들과 민족주의


  

   한국 지식인들이 서양학문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요사이 일만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경향은 최근에 들어와 더 심해졌습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자존심을 다 팔아 먹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특히 민족주의 문제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각종 언론매체를 통해 민족주의를 비판하는 지식인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민족주의는 세계화 시대에는 이미 낡은 이데올로기라는 것입니다. 배타적이며 폐쇄적이라고도 하고  나치의 파시즘과 같이 독재적이며 약자를 억압하는 이념으로 공격하기도 합니다. 이제 민족주의를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심형래 감독의 디워까지도 민족주의 마케팅을 했다고 비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입니다. 

   

   최근에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에서 한국의 단일민족이라는 생각이 인종차별을 가져올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자 당장에 한국민족은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떠드는 사람들도 나타났습니다. 우리 민족이 고대에 여러 종족들의 피가 합쳐져 만들어졌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 한국은 이미 다민족사회이므로 단일민족이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민족주의는 안 되고 애국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민족과 민족주의가 전방위적으로 수난을 당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민족과 민족주의를 제대로 알기나 하며 이런 소리를 하는 것일까요? 유감스럽지만 대부분 그렇지 않습니다. 서양학자들의 글을 몇 자 적당히 읽고 되는 대로 떠들어대는 소리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정말로 민족주의가 무엇인지 왜 필요한지를 고민하지 않습니다. 특히 요사이에는 민족주의를 비판해야 진보적인 지식인으로 보이니까 유행을 타려고 하는 행동들입니다.  

   

   이런 태도는 모두 1980년대에 서양에서 등장한 새로운 민족주의 이론에서 비롯합니다. ‘근대주의 해석’이라고 부르는 것으로 어네스트 겔너나 에릭 홉스봄 같은 영국 학자들이 대표자들입니다. 요사이에 서양의 민족주의 연구자들 다수가 이 방향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민족은 길어야  200년의 역사 밖에 갖고 있지 않습니다. 18세기 말부터 자본주의 발전이나 산업화라는 근대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보통 민족이 수천 년 전에 만들어졌다고 생각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주장입니다. 

   

   민족이 이렇게 제멋대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자기가 어느 민족의 한 사람이라고 느끼는 민족정체성도 매우 미약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민족정체성이라는 것이 학급이나 사교클럽, 심지어 갱단의 정체성과 같은 것이라고 막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일시적이고 금방 사라진다고 하는 뜻입니다. 

   

   또 민족주의는 지배계급이 대중을 동원하고 지배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든 이데올로기입니다. 그러므로 억압적인 성격을 갖습니다. 그러니 그것이 대중들에게 깊이 뿌리내리기는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람들은 민족주의가 역사 속에서 해온 일을 매우 부정적으로 봅니다. 옛날에는 한 국가 안에 여러 종족이 어울려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민족이라는 것이 만들어지며 국가의 경계선과 민족의 경계선을 일치시키려니 문제가 생긴다는 것입니다. 수많은 종족들이 스스로 독립하여 민족국가를 만들려고 하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고 한 국가 안에서도 지배 종족과 다른 종족들 사이에 싸움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유혈과 전쟁을 불러온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민족의 미래에 대해서도 부정적입니다. 이제 세계화 시대에 들어왔으므로 민족도 당분간은 존재한다 해도 얼마 안 지나면 사라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민족의 결집력이라는 것이 약한 것이니까 당연합니다. 민족주의도 자연히 사라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도 역사적 사명을 다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런 주장이 옳은 주장일까요? 부분적으로는 일리가 있는 것도 있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엉터리 주장이고 서양 사람들 입맛에 맞게 만들어진 이론입니다.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민족의 역사는 이들의 주장보다 훨씬 깁니다. 유대민족 같이 수천 년 되는 경우도 있고 수백 년 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한국을 포함하여 아시아나 유럽의 대부분의 중요한 민족들은 최소 수백 년의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산업화나 자본주의는 민족을 만든 것이 아니라 그 성격을 약간 변화시키고 그 발전을 촉진시켰을 뿐입니다. 물론 2차대전 후인 최근에 만들어진 민족도 있습니다만 그것이 기준이 될 수는 없습니다.

   

   민족주의는 지배계급이 대중을 지배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다른 민족과의 경쟁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것은 민족이나 민족주의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영국과 프랑스에서 17-18세기에 분명히 나타납니다. 두 나라 사이의 경쟁이 민족주의를 발전시켰습니다.

   

   유럽에서 19세기가 민족주의의 시대가 된 것은 산업화가 나라들 사이의 경쟁을 더 격화시켰기 때문입니다. 산업화한 나라와 그렇지 못한 나라 사이에 힘의 차이가 커졌기 때문입니다. 20세기에 아시아, 아프리카에서 민족주의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된 것도 식민지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민족주의는 내부적 요인이 아니라 외부적 요인에서 비롯되었습니다.

   

   민족정체성은 매우 강인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민족의 종족성이나 언어, 문화, 종교, 관습, 공동의 역사적 경험이 그것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간다고 해도 몇 세대씩 민족정체성이 이어지는 것은 그 때문입니다. 또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사교클럽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종족으로 구성된 많은 유럽국가에서 19세기에 민족주의 운동이 거세게 일어나고 그것이 많은 정치적 분규를 만들어낸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산업화로 국가 사이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국가 안의 주된 종족이 다른 소수 종족들을 더 강하게 지배하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언어나 문화, 역사해석마저 강요하니 반발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 원인을 살피지 않고 민족주의가 분란만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태도입니다. 

   

   민족이 얼마 안가 사라질 것이라는 것은 비현실적인 주장입니다. 세계화 시대라고 하지만 여러분 가운데 스스로를 지구인이라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까?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어느 민족의 한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지구인으로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외계인이 지구인을 공격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민족이 쉽게 사라질 수 있겠습니까?

   

   또 지금의 세계화 시대는 그야말로 모든 세계 사람들이 평등하게 대접받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의 시대가 아닙니다. 약소국가에 대한 선진국의 억압과 착취가 더 강화되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니 이런 차별과 억압의 시대에 민족주의가 더 강화되면 되었지 약화될 수는 없습니다.

   

   현재 영국과 미국학자들이 주도하고 있는 이 ‘근대주의 해석’은 기본적으로 이들 나라의 이익에 맞게 만들어진 것입니다. 강력한 정치력, 경제력, 군사력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이들에게는 특별히 민족주의를 주장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후진국의 민족주의는 자기들의 세계 지배 야욕에 방해가 됩니다. 전 세계적으로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자신들에게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또 이들이 민족주의를 억압적이고 비도덕적인 이데올로기로 모는 것은 겔너나 홉스봄 같은 사람들의 개인적 경험 때문입니다. 이들은 동유럽 출신자들로 나치독일 민족주의의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강대국들의 파괴적 민족주의와 식민지에서 벗어나 독립과 자주를 지키려는 제3세계 국가들의 민족주의는 질적으로 다른 것입니다.

   

   그러니 이런 이론을 우리가 무작정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황당무궤한 일인지 아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진리도 아니고 보편타당한 원리도 아닙니다. 그것은 후진국들과 약소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학문적인 무기입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이런 잘못된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학문이 자주적 성격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 입장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 태도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는 사대주의적인 태도로 빨리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한국은 경제력으로는 이제 세계 10위권에 근접했지만 정치적 군사적으로는 매우 취약한 수준에 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세계 4대강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인 통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 나라의 눈치를 보아야 합니다. 따라서 민족을 통합하고 외세에 대항하기 위해 민족주의는 우리에게 아직도 매우 중요한 이념입니다. 섣부른 해체는 금물입니다.

 

   그렇다고 우리 민족주의가 배타적이거나 폐쇄적일 필요는 없습니다. 국제사회와의 협력이나 개방경제와 배치되는 것도 아닙니다. 외국의 쓸 데 없는 간섭을 막고 우리의 이익을 지키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일부 비판론자들은 한국사회에서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차별과 억압을 민족주의 탓으로 돌립니다. 물론 한국인들이 다른 아시아 노동자들을 부당하게 멸시하고 억압하는 것은 잘못된 일입니다. 고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민족주의와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닙니다.

   

   또 여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우리 민족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든가 한국이 다민족사회라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것입니다. 민족은 핏줄로만 연결되는 존재가 아닙니다. 여러 정치적 역사적 문화적 요소가 긴 역사 속에서 그것을 만들어냅니다. 그러므로 고대에 여러 종족의 핏줄이 섞였다 해도 그것 때문에 한국이 단일민족이 아니라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입니다.  

   

   외국인 노동자나 외국인 신부들이 많이 들어왔다고 해서 다민족사회가 되는 것도 아닙니다. 다민족사회라는 것은 여러 민족이 함께 국가를 만들고 그 안에서 각각의 민족이 고유의 민족적 성격을 계속 유지할 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은 현재 다민족사회로 갈 수 있는 싹을 갖고 있을 뿐입니다. 그 이상은 아닙니다. 우리의 민족적 정체성을 유지하도록 계속 노력해야 합니다. 

   

   월드컵 때와 같이 한국사회에서 가금씩 나타나는 민족적 열정의 분출을 심각하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100년간 외세에 시달리다가 이제 처음으로 민족적 자긍심을 느끼며 펴보는 기지개에 불과합니다. 사실은 그 정도로는 너무 미약합니다. 냄비처럼 금방 끓다가 금방 식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민족주의를 우리 몸과 마음 속에 체질화하여야 합니다.

   

   강대국들이 우리보다 더 민족주의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사실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미국인들이 즐겨 말하는 애국주의는 민족주의의 미국식 이름일 뿐입니다. 두 개가 전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모든 인류가 평등하게 사는 코스모폴리타니즘은 이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이상에 현혹되어 현실을 잊는다면 결코 외세의 시달림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러분, 민족주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그것은 낡은 것도 시대에 뒤떨어진 것도 아닙니다. 현실에 살아 있고 큰 힘을 갖고 있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이데올로기입니다. 민족주의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끝  -

by 한국 혁명 | 2007/09/27 12:35 | 한국혁명 (글)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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